사회

이상과 현실, 이상주의자가 꿈꾼 이상세계와 현실세계 사이 간 괴리

2019-11-11

[이음리퍼블릭 권승원 기자]


인류 역사 속 세상을 변화 시킬 수 있다는 꿈과 이상을 짊어진 수많은 사상과 기술들이 등장해왔으며 그 중 많은 것들은 '혁명'이라는 단어를 붙일 정도의 인류사 속 큰 변화를 일으켰다. 일일이 하나하나 언급할 순 없지만 많은 사상가, 발명가들은 '인류에게 이로운', '인류를 변화시킬' 목적을 품고 그들의 꿈과 이상을 세상에 전파했으며 그렇게 전파된 사상과 기술들은 나름의 모습으로 인류를 지금의 모습으로 만들어왔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나온 사상과 기술들이 오류로 인해 말 그대로 '나름의' 모습대로, 그 사상과 기술을 만들고 전파한 이들의 꿈과는 다르게 세상에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모두가 공평하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취지 아래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공산주의는 사상 자체에서 그 사회를 이루는 인간을 너무 이상적으로만 평가했기에 인간이 가진 다양한 면과 그로 인한 사상의 붕괴를 예상하지 못했다. 


산업혁명과 함께 공업주의 사회 속 필수 공급물이 된 광물의 공급을 위해 노벨에 의해 개발된 다이나마이트는 광부들의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 세상에 등장했다. 그러나 이것이 살상무기가 되며 날개를 단 듯 개량과 보급이 거듭되었으며, 이로 인해 인간을 이롭게 만들기 위해 개발된 발명품이 인간을 가장 많이 죽인 살상무기 중 하나가 된 것이다. 


따라서 결과론적으로 볼 때, 인류를 보다 이상적이고 이롭게 변화시키겠다는 아름답고 순수한 포부로 사상과 기술을 창조하고 전파한 이들은 그들이 꿈꿨던 '이상사회'에 집중했으나 그 이상사회를 이루는 사람이라는 존재를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채 사상과 기술을 만들고 전파했다고도 볼 수 있다. 이것은 인류사에 위대한 업적을 남긴 이들을 폄하하는 발언이 아니다. 단지 그들이 품었던 순수한 이상과는 전혀 다르게 그들의 사상과 기술이 세상에서 변모한 사실을 말하는 것이다.


이상과 현실의 차이로 인해 생겨난 괴리 중 현재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가장 크게 공감할 수 있는 예로 인터넷에 대해 언급하고 싶었다.


80년대 후반을 거쳐 90년대 세상에 '세계화'의 바람을 타고 급속도로 전파된 인터넷은 당시 많은 사람들을 꿈꾸게 만들었다. 90년대 출판되어 당시의 문명 사회를 묘사한 책 '현대문명진단'은 출판 당시 핫한 이슈인 인터넷과 그로 인해 새로 생겨난 용어 '네티즌'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약 20년 전 네티즌에 대해 묘사한 글을 보고 아마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많은 이들은 당시 예상했던 것과는 정반대로 인터넷이 변모해왔음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처음과 두 번째로 지적한 "네티즌에게 민족의 구분이 없다, 네티즌은 피부색을 초월한다!"는 현재의 관점에서 볼 때 너무나도 큰 오류를 품고 있었다. 인터넷이란 것은 결국 영어란 현 세계 공용어에도 불구하고 모국어가 가진 영향력에 의해 서로 다른 모국어를 가진 이들끼리 주로 소통하는 형식으로 발전해왔다. 구약성경 속 등장한 바벨탑 사건이 대표적으로 나타내듯, 언어는 민족을 나누는 가장 큰 지표임에도 언어의 장벽을 고려하지 않고 '국경과 민족의 구분이 없다'라고 지적한 것은 이미 인터넷, 그리고 인터넷으로 형성되는 세상을 예상하는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샘이다. 여기에 더해 인터넷은 물리적 자유성과 익명성을 무기로 서로 다른 민족과 인종에 대한 혐오감을 더욱 가감없이 드러내는 플랫폼이 되어왔다. 이런 특성때문에 인터넷을 통한 서로 다른 이들에 대한 혐오를 바탕으로 한 차별과 싸움은 더욱 크게 조장되어왔으며 인류사의 비극이지만, 인터넷을 통한 테러조직 결성과 테러계획 모의가 이뤄지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네티즌은 남녀 차별을 하지 않는다"라는 문구는 남녀 갈등이 점점 심화되고 있는 현 대한민국 사회 속에서 더욱 아이러니로 다가온다. 굳이 큰 사건과 구체적인 명칭들을 언급하지 않아도 이 글을 읽고 있는 이들의 대부분은 인터넷으로 인해 대한민국 사회 속 남녀 간 갈등과 싸움이 얼마나 크게 번졌는지를 익히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짚어봐야 할 요소는 모든 정보와 아이디어를 사용자의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공유할 수 있는 인터넷의 특성이 더욱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인터넷을 통해 진실인지 허위인지의 구분없이 무분멸하게 전파된 정보들은 아무런 의심없이 그 정보를 받아들이는 이에게 그릇된 사상을 심게 만들며 비슷한 편견을 갖고 있던 이에게는 그 사상을 더욱 굳히게 만든다. 이는 서로 다른 민족과 인종, 남녀 간 갈등 뿐만 아니라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이들 간 갈등심화에 전부 인터넷이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 할 수 있다. 


"네티즌은 빈부차이를 모른다"라는 예상 또한 현재의 인터넷 세상을 지켜보고 있는 많은 이들에게 의아하게 다가올 것이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즉 'SNS'가 어디에나 영향을 미치고 있는 현재의 세상 속 많은 이들은 '자신이 남들에게 보여지기 원하는 모습'으로 자신을 SNS에 노출시키고 있다. 노출된 모습 속 이면의 진실이 다를지라도 단순히 누군가 SNS를 통해 노출한 모습은 그것을 지켜보는 이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안겨주는 시대가 다가온 것이다. 심지어 SNS에 노출된 누군가의 모습을 보고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며 괴로워 하는 이들조차도 이제는 자신이 봤던 그 모습이 연출을 거친 것임을 인지하고 있다. 그러나 시각적 효과와 그로 인해 받는 일시적 감정은 사람의 정서에 큰 영향을 미치며 사회와 세상을 향한 환멸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마지막, "네티즌의 세계는 진정한 민주주의 세계다"라는 의견은 분명 현재의 상황 속 찬반이 존재할 수 있다. 인터넷을 통해 일어난 사회 속 움직임과 인터넷을 통해 퍼진 누군가의 목소리는 분명 민주주의가 가진 선기능을 인터넷을 통해 증명한 사례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분명 "인터넷을 통한 민주주의는 실패다"라는 의견에도 현재의 상황 속 많은 현상들이 분명한 증거로 작용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 요소 중 하나는 사회 구성원 간 소통이며 그것에 가장 중요한 필수요소는 '듣는 귀'일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인터넷은 누구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이기에 정보가 범람하는 공간이다. 하지만 이로 인해 듣는 귀를 닫아버리게 만드는 현상을 연출하고 있다. 자신과 의견이 다른 이의 말을 듣기보다는 자기 주장을 퍼트리고 자신의 주장과 의견이 맞는 사람들끼리만 모이는 현상이 인터넷을 통해 기전 인류사회보다 더욱 심화되고 있다. 또한 큰 문제는 자신이 바로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는 자각을 하지 못한다는 것에 있다. 이것의 가장 큰 예는 인터넷에 잘못된 정보가 많다는 사실을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해 자신과 의견이 다른 이가 왜곡된 정보를 갖고 왜곡된 주장을 하고 있음을 공격하는 무기로 사용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분명 상대에게 발언권을 주고 상대의 의견을 경청한 뒤 자신과 상대의 의견을 조율해 다른 옵션을 선택한다는 민주주의와는 상반된 현상일 것이다.


인터넷이란 도구는 분명 짧은 역사에 비해 인류 역사, 인류가 살아가는 모습을 획기적이게 바꾼 기술이다. 그러나 분명 인터넷이란 도구와 기술로 인해 변화된 세상을 상상하며 인터넷의 개발과 전파에 자신의 삶을 바친 이들에게 현재의 현상은 예측하지 못한 일일 것이다.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이상사회를 꿈꾸는 것과 동시에 사람이라는 복잡한 생물, 그리고 그 사람이 이루는 공동체에 대한 이해가 분명히 동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직 무엇이 정답인지는 명확하게 알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인류는 역사를 통해 수많은 오류와 실패 사례를 갖고 있다. 그 모든 것을 적어도 한번은 돌아본 뒤 일어났던 일들에서 무언가를 깨닫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발걸음이 필요한 시점인 것 같다. 


글/ 권승원 hayden@iumrepublic.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