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의식 자체가 병이 되어버린, 무상식의 시대

2019-08-22

[이음리퍼블릭 권승원 기자]    


외교적 분쟁, 혐오갈등을 넘어선 혐오범죄의 범람. 현 대한민국 사회는 서로 다른 이에 대한 증오와 혐오로 촉발된 사건들로 물들여지고 있다. 


사람은 저마다의 다른 가치관과 그 가치관에 따른 생각을 갖고 있기에 사람 간의 생각 차이는 명백히 존재할 수 있는, 아니 존재해야 하는 이치이다. 하지만,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회 속 유난히 서로의 다름을 향한 증오와 혐오, 그로 인한 극단적 갈등이 현 시대에 일어나고 있는 원인은 무엇일까?


많은 이유가 존재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아마 기존 인류 사회가 '상식'이라 인정하던 상식이 더 이상 상식으로 많은 이들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상식'이란 것은 성문화된 법으로는 정의된 바 없으나, 사회의 관념에 따라 불문율처럼 모두가 인지할 것이라 생각되어지는 관념을 뜻한다. 하지만 이런 상식이 상식이 되기 위해서는 분명한 전제조건이 따른다. 성문화된 법이 아닌 만큼 많은 이들이 그저 자연스럽게 공감하고 인지한 뒤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진다는 전제조건이 성립되어야만 한다. 

현 사회가 품은 문제는 여기에서 온다. 현 시대는 차분하게 사색하고 공감하는 능력을 잃어버리고 있다. 사색하고 사유하며 공감하는 능력의 부재는 곧 자아성찰, 자기 객관화의 부재와 동시에 타인과의 관계에서 일어난 객관적 문제들을 그저 "그냥" 혹은 "몰라"라고 외면해버리는 현실을 만들어 버린 것이다. 즉, 타인의 감정을 고려하고 일어난 일들의 상관관계 속에서 옳고 그른 것을 인지하려는 의식 자체가 병이 되어버린 시대가 되어버렸다. 의식 자체가 병이 되어 버린 시대는 곧 서로 간 상식을 상식으로 인지하고 받아들이는 상황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인터넷을 통한 가상의 공간 속 수많은 정보와 가상의 관계들. 그리고 스마트폰의 보급을 통한 해당 정보와 관계들에 더 쉬운 접근은 사람 간 상식을 상식으로 받아들이던 인류의 인간성을 앗아간 것처럼도 보인다. 이는 무조건적인 기술을 향한 비판이 아니다. 단지, 기술의 발달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깊게 사유하고 공감하는 능력을 잃어가고 있는 현상을 지적한 것이다. 의식 자체가 병이 되어버린 시대의 원인을 살펴본 것이다.

앞서 언급한, 요즘 시대가 가장 많이 보이는 "몰라" 혹은 "그냥"이란 태도는 타인의 고통 따위가 내 머리를 혼잡하게 만들어선 안 된다는 이기심과 현재 일어난 현실로부터의 외면 및 책임회피를 뜻한다. 이는 많은 인격체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가장 무서운 태도일 수 있으나 현 사회는 그런 태도가 아무렇지 않게 확산되어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인터넷을 통한 가상의 공간 속 자신의 모습에도 익숙해져 있기에, 가상의 공간 속 자신의 모습과 실제 자신의 모습을 헷갈려하는 현상이 찾아온 것처럼도 보인다. 한 영국의 심리학자는 말했다. 악플을 작성하는 이의 심리는 악플을 작성하는 작성자 자신이 이미 악플을 작성하고 있는 인격체는 본인이 아닌 가상의 공간 속 또 다른 누군가로 인지하고 있으며, 그렇기에 자신의 행동에 거리낌과 죄책감이 없을 수 있다고. 이런 심리는 비단 악플에 한정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영화 '인셉션' 속 현실과 꿈을 혼동하는 것처럼, 현실과 스마트폰 속 세상을 혼동해 살아가고 있는 현 시대는 가상의 공간 속 본인의 인격과 실제 세상 속 본인의 인격을 혼동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또한, 차분하게 사색하고 공감하는 능력의 부재 또한 여기서 온다. 현실과 가상의 공간 속 자신을 구분할 수 없는 실정이기에 차분히 자기 자신과 일어난 일들에 대해 사유하고 사색하며 타인에게 공감할 여유 따위는 없는 것이다. 이미 많은 것들이 혼란스러우며, 그 혼란함으로 인해 "더 이상 내게 많은 걸 묻지마"와 같은 태도는 "몰라", "그냥"같은 일관적인 대응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타인에게 공감, 아니 공감하는 척을 하기조차 힘든 상태에 다다른 것이다. 그렇기에, 그저 내키는 방식대로 행동하고 자신의 행동에는 책임을 스스로 묻는 노력이 없는, 그런 개개인이 모여 갈등의 골이 깊어져만 가는 사회가 형성되고 있는 실정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사색하고 공감하는 능력은 부재하고 있는 가운데, 자신의 감정에 집중하는 능력은 더욱 커져만 가고 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공감력은 없지만 감수성은 풍부한' 인간의 출현이 일어나고 있다. 현재 사회를 물들이고 있는 외교 문제, 혐오갈등으로 촉발한 혐오범죄의 기저는 바로 여기에 있다. 내가 느끼는 감정과 피해는 너무나 막심해 견딜 수 없으나 그 일의 근본적인 원인과 사실관계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의 감정, 나의 슬픔, 나의 분노만을 담은 배려 없는 언행들은 불문율처럼 여겨진 상식을 파괴하고 나아가 타인 간 깊은 갈등과 상처를 만들고 있으며 이는 사회를 넘어 국가 간 문제로도 야기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언행들, 이른바 '상식이 없는' 언행들은 누군가를 향한 비열한 술수로 나타나기도 하며, 누군가를 향한 돌이킬 수 없는 범죄, 그리고 국가 간 돌이킬 수 없는 외교노선을 만들고 있다. 

진부한 이야기지만, 사색하고 공감하려는 노력, 타인의 감정을 고려하고 일어난 일들의 상관관계 속 옳고 그름을 인지하려는 의식을 계속 깨우려 해야 할 것이다. 현대 미래 사회를 예견한 소설로 극찬을 받은 조지 오웰의 소설 '1984'가 묘사한 것처럼, 의식이 죽어버린 시대는 비극 자체일 것이다. 개개인이 모여 사회, 국가 체재를 이루고 있는 현대사회 속 지도자의 의식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개개인의 깨어있는 의식은 그것보다 중요함을 앞서 언급한 소설 1984는 강조했다. 개개인의 의식, 특히 옳고 그름을 생각하지 못하도록 이성을 마비시킨 무언가는 역사 속 무서운 결과들로 세계사의 비극을 야기했다. 나치, 일본 제국주의 등 모든 것은 개개인의 의식이 마비되었을 때 일어난 무서운 현상이자 인류의 비극이였다. 또다시 의식의 마비로 인한 '무상식'이 보급되려하는 이 시점, 많은 사회 속 현상들은 우리에게 경종을 울리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글/ 권승원 hayden@iumrepublic.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