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혐오의 시대' 속 심화된 남녀 갈등,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2019-08-05

[이음리퍼블릭 권승원 기자]  


최근 몇 년 전부터 '혐오'라는 표현이 뉴스 미디어를 통해 지속적으로 들려올 만큼, 대한민국 사회는 혐오가 난무하는 시대를 겪고 있다. 이 사회 속 큰 문제를 만들고 있는 혐오 문제 중 가장 크게 가시적 현상으로 촉발되고 있는 현상은 단연 남녀 갈등이라 할 수 있다.


대한민국 사회 속 발생하고 있는 남녀 갈등은 단순히 갈등을 넘어 심한 사회적 현상, 그리고 나아가 범죄로까지 일어나는 심각한 형국에 처해있다. 서로 다른 성을 향한 혐오를 가득 담은 비방과 욕설, 극단적인 행동들이 사회 속 어딘가에서 난무하고 있으며 이런 현상들이 사회적 문제로 번지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무엇이 이런 서로를 향한 혐오, 그리고 갈등을 촉발시킨 원인이었을까? 


그 원인을 파악하기 전 우선 인류가 멸망하지 않고 지금까지 이어져 온 현상 속 순리를 살펴봐야 한다.


구약 성경 속 창세기 1장 3~4절은 다음을 서술하고 있다. "3.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4.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즉, 동서양을 막론하고 세상 속 순리를 뜻하는 '음과 양의 조화'가 생겨난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이어 창세기 1장 27절은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라고 서술하며 인류의 탄생과 서로 다른 성의 출현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구약 성경 속 태초에 현재의 세상이 창조된 과정을 묘사하는 창세기가 이 사실들을 무려 1장에 언급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음과 양, 낮과 밤, 그리고 그것과 동일하게 비유되어지는 남자와 여자의 조화가 세상을 이루는 기본 순리라는 것을 뜻하는 것일 것이다.


이런 세상 속 순리에 따라 인간들이 사회를 구성한 인류는 지금까지 멸망하지 않고 이어져 오고 있다. 지구상에 어떤 사람도 신화 속 이야기처럼 알을 깨고 나온 사람은 없다. 늘 아슬아슬해보이던 인류 사회가 오랜 시간을 거쳐 현재까지 진화하고 발전한 것을 보면 이 원리는 부정할 수 없는 분명한 순리이다.

 

그렇다면 순리가 서술하는 음과 양의 법칙을 적용해 남녀의 조화에 대해 이야기 할 필요가 있다. 음과 양, 낮과 밤이 다른 것처럼 남녀는 서로 다른 성이기에 서로 간 분명한 특성과 그로 인한 차이를 지니고 있다. 때로는 이 차이가 서로 극명하게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마치 밤이 낮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어두운 것처럼. 그렇기에 서로 너무나도 다른 차이를 극복한 순조로운 조화에는 서로 다른 성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분명히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것처럼 서로 다른 성에 대한 혐오를 담은 언행과 그로 인한 갈등의 기저에는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일반화와 편견이 존재한다. 지금 우리가 땅을 딛고 살고 있는 대한민국을 예로 들 수도 있다. 한국남자 또는 한국여자를 향해 서로가 혐오를 가득 담은 비속어가 웹상에서 마구 난무하고 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거의 모두가 그 용어들을 한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그 혐오의 용어는 결국 서로의 차이와 다름을 이해하지 못한 오해, 그리고 이로 인한 분노와 혐오가 깔려있다는 것이다.


물론, 오랜 역사를 거쳐 현재까지도 이어졌던 사회 속 성별 간 차이에 따른 부조리한 관행들이 존재했다. 그렇다. 사회 속 불평등한 차별과 억압은 오랜 시간 특정 성별에게 크나큰 시련과 고통이었다. 그러나 그 불평등과 차별, 억압의 원인도 결국 모두 서로 다른 성에 대한 이해와 배려 부족으로 인해 생긴 일반화와 편견의 오류였다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혐오의 시대' 속에 순응해 서로 다른 성을 향해 혐오를 가득 담은 언행을 일삼는 이들에게 한 번이라도 이 사실을 되새겨 볼 것을 권유하고 싶다. 혐오의 언행을 일삼고 있는 자기 자신도 결국 한 여성, 한 남성의 아들이자 딸이라는 사실 말이다. 자신의 자아, 즉 '에고'는 물론 소중하고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자기 자신이 인지하는 자신의 정체성이 존재함과 동시에 서로 다른 성을 가진 이들이 사랑의 결실로 만들어낸 하나의 생명체로서, 탄생과 동시에 부정할 수 없이 부여된 관계 속 자기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런 만큼 자신의 어머니, 자신의 아버지와 같은 성을 가진 이들을 성별로 구분해 차별하고 나아가 그 차별로 인한 흉악 범죄를 저지르는 이들에게 꼭 이 사실을 되새겨 볼 것을 권고하고 싶다.


그리고 한편으론, 부당한 차별에 대한 저항과 투쟁을 자신이 가진 무차별적이고 비논리적인 분노 발산과 철저히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역사 속 부당한 차별을 극복하기 위해 투쟁한 이들은 비단 자신 삶 속 불편함과 억울함 만이 아닌 다수를 위한 숭고한 희생을 보였다. 자신 삶에 대한 불편함, 그에 따른 불만을 숭고한 희생과 연관 지어 표출하는 오류를 보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분명 현재의 인류 사회는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그런 만큼, 이제는 차별에 대해 정당한 방법으로 자신의 주장을 펼치고 자신의 능력과 인품을 통해 그 뜻을 관철시킬 수 있는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 극단적인 언행으로 인한 다른 성에 대한 편견, 그리고 그로 인한 사회 속 혐오와 갈등을 악화시켜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전하고 싶었던 메세지는 남자와 여자, 서로 다른 성별에 따른 엄연한 차이가 존재하는 것은 순리이며 명백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 차이마저 남녀를 불문하고 사람 간 차이를 보일 수도 있다. 그렇기에 성이 가진 일반적인 차이에 대한 이해와 배려는 분명 조화로운 세상, 평화로운 인류를 만들어낼 아름다운 태도일 것이다. 그러나 다른 성이 가진 차이에 대한 일반화와 그것을 바탕으로 만들어낸 왜곡된 편견 및 차별은 지금껏 인류 사회가 서로 다른 성에 대한 차별과 불평등을 만들어온 실수를 거듭하게 만드는 원인이 될 것이다. 그렇기에 성별과 무관하게 그 사람 자체가 가진 특성으로 한 사람을 평가하는 세태가 이뤄져야 할 것 같다.


또한, 차이에 대한 이해, 그로 인한 배려는 상대방의 이해를 기반으로 한 분명한 선의이다. 그렇기때문에 받는 이 또한 항상 감사함을 느끼고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차이에 따른 이해를 자신의 권리로 여기는 태도 또한 분명히 혐오의 시대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 자신이 받은 이해와 배려가 분명한 누군가의 선의임을 깨닫고 기꺼이 감사함을 표하고 답할 줄 아는 사회를 이뤄야 한다.            


자칫 이 글이 또다시 남녀 갈등에 불을 지필 수 있을 수도 있다는 두려운 생각이 들기에 고백하는 바이다. 나는 여성의 몸으로 인간이 물리적으로 겪을 수 있는 최대 고통 중 하나인 출산을 기꺼이 견뎌 나를 이 세상에 낳아주신 나의 어머니를 존경한다. 또한, 나를 이세상에 연결시켜 주신 분, 지나친 피로와 시련을 감내하시며 내 삶을 지원해주신 나의 아버지 또한 존경한다. 그리고 나 또한 차이가 존재함으로 인해 이해와 배려가 필요한 이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선 내에서 절대적 도움을 제공할 것을 약속한다.

글/ 권승원 hayden@iumrepublic.com   

혐오는 남자던 여자던 그냥 지 인생이 지맘에 안드니까 남탓하는 애들이 하는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