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극으로 치닫는 한일관계, 역사소설 ‘제명공주’가 주장한 백제에서 답을 찾다…①

2019-08-02

[이음리퍼블릭 권승원 기자]    


2019년 8월 2일(현지시간) 일본 각의가 화이트리스트, 즉 수출 심사 우대국가에서 한국의 제외를 결정하며 한일관계는 몇십 년 만에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냉전으로 흐르고 있다.


과거 태평양 전쟁의 강제노역 문제 합의 불이행을 지적한 아베 신조 총리가 반도체 핵심소재 3대 품목의 한국 수출 규제를 취함에 따라 한국 정부와 한국의 성난 민심은 대응하였고, 여기에 역으로 일본 정부가 또다시 날선 공격을 가한 것이다.


역사 문제를 두고 늘 편치만은 않았지만, 이웃 국가로서 건전한 협력관계를 유지하기도 했던 두 나라의 갈등이 두 나라 간 반복된 역사처럼 다시 극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양국 간 작금의 사태, 즉 현재 일어나고 있는 양국 간 문제를 두고 많은 이들이 제각각 서로 정치 및 외교에 관한 해결책을 모색하며 토론하는 광경들이 어디서나 목격되고 있다. 서로에 대한 격한 분노의 감정이 일고 있는 시점에 많은 이들은 극단적인 정치 및 외교 노선을 주장하고 있기도 하다. 정치 및 외교는 매우 섬세하고 복잡하며 다루기 어려운 생명체와 같다. 이는 한 번의 결정에 따라 국운, 그에 따른 국민들의 운명과 삶을 결정짓는 요소이기에 양국, 무엇보다 각 정부의 복잡한 스토리와 이해관계를 정확하게는 알 수 없는 일반 국민인 우리가 해당 분야에서 직접적인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민주주의 사회, 국민이 국가의 주인 역할을 수행하는 이 사회에서 국민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이 상황을 단순의 작금의 사태만을 두고 평가하고 해결하려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복잡미묘한 정치 및 외교 현안을 함부로 결정할 수 없는 일반 국민으로서 우리가 해야할 것은 무엇일까를 고민하던 차에 우연히 몇 달 전 읽었던 역사소설 '제명공주'가 생각이 났다. 모두가 아는 '역사는 반복된다'라는 명언처럼, 양국은 지속적으로 극으로 치닫는 비극을 오랜 역사 동안 만들어왔다. 더 직접적으로 언급하자면, 가장 가시적인 사건으로는 임진왜란, 그리고 1910년 경술국치를 비롯해 지속적으로 일본의 침략 역사가 이어져왔다는 것이다. 사건의 지속적인 반복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런 만큼, 우리가 과거의 역사, 그리고 현재 일어나고 있는 역사를 관통하고 있는 무언가를 찾아내 그 갈등의 근원을 풀어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명공주'는 이런 한일관계의 갈등에 대해 역사를 통한 갈등 원인을 지목하고 해결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명공주'는 백제 멸망 후 3년 뒤인 663년, 당시 '왜'로 불렸던 일본이 국운을 걸고 한반도로 건너와 백제를 부흥하기 위해 나당 연합군과 '백촌강 전투'를 펼친 것에 대한 의문으로 시작되었다. 우리는 학창시절 역사 수업을 통해 단순히 '백제가 일본의 고대 문화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라는 사실을 배웠을 뿐이었다. 하지만, 당시 일본의 인구를 감안했을 때, 왜가 5만 명의 병력을 출정시켜 한반도에서 전투를 치뤘다는 것은, 왜의 입장에서는 국운을 건, 그야말로 사력을 다한 전투였다는 것이다. 단순히 문화를 전파해준 교류국의 부흥을 위해 전체 인구에 가까운 병력을 보냈다는 것은 사실 이해할 수가 없는 사건이다. 이를 두고 소설 제명공주는 백제의 왕자로 일본에 불교 및 철기 문화를 전파했던 임성태자의 집에서 백제의 마지막 왕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의자왕 그리고 당시 왜의 천황이었던 제명공주가 유년 시절을 함께 보냈다는 공식 사료를 바탕으로, 두 사람이 사실은 사랑했던 사이였다는 상상력을 더해 이야기를 이어나가고 있다.


두 사람의 사랑 관계는 소설 제명공주의 저자가 밝힌 것처럼 사실성을 더하기 위해 상상에 기반한 픽션이지만, 소설은 한국에는 거의 존재치 않는, 그러나 일본에 존재하고 있는 백제사에 관한 사료를 통해 역사적 사실을 담아내고 있다.

일본의 가장 오래된 역사서인 '일본서기'를 포함해, 일본에서 발견되고 있는 백제사에 관한 사료들은 '담로' 제도를 통해 일본에 큰 영향을 미치던 백제가 고구려의 침략, 그리고 왕실 쿠테타를 겪음에 따라 직접 왕자들을 일본에 보내 국가를 건설하고 직접적인 통치권을 가졌음을 설명하고 있다. 특히 백제 20대 개로왕의 아들인 '곤지'는 일본으로 건너가 '곤지왕'이 되어 본격적인 국가를 건설했으며, 그를 모시는 신사가 일본 내 여러 군데 있을 만큼 일본인들에게 추앙받고 있다. 이어 소설은 일본 역사 학계의 자료를 기반으로 백제 멸망에 따라 백제의 귀족 및 기술자를 포함한 백제 유민들의 대규모 일본 이주를 주장하며, 야요이 시대 5 만명 남짓했던 일본의 인구가 백제 멸망 직후인 7세기경 500만 명으로 증가한, 즉 대규모 유입 외에는 설명이 안되는 인구 증가율을 근거로 내세웠다. 이렇듯, '소설'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제명공주는 많은 역사 사료를 기반으로 역사가 담고 있는 스토리에 대해 매우 논리적인 설명을 담고 있다. 또한, 이런 백제의 흔적은 과거 백제가 나라를 건국한, 현재 일본 아스카 지역 곳곳에서 '백제역', '백제천', '백제교, '백제소학교', '백제마을' 및 '백제정식' 등 여러 형태로 남아있다.


이런 백제와 일본의 관계, 그리고 더 나아가 소설 제명공주에서는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일본에 백제만큼 큰 영향을 끼쳤던 한반도의 고대 국가 가야와의 관계가 도리어 경술국치 시절, 일본 식민사관에 의해 왜곡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즉, 한반도의 고대 국가들과 왜의 긴밀한 관계가 역으로 임나일본부설로 뒤바뀐 것이다.


소설 제명공주가 ‘일본은 백제다’라는 말을 남길 정도로, 백제가 일본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한반도의 위치한 고대 국가 백제와 가야에 대한 역사 사료들, 흔적들을 일본은 현재 미세하게나마 갖고 있다. 반면, 백제와 가야가 위치했던 한반도에 자리잡은 대한민국이 백제와 가야사를 대했던 태도를 돌아봐야 할 것 같다.


2부에서 계속 


글/ 권승원 hayden@iumrepublic.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