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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은 왜 갑자기 블록버스터가 되었나

2019-08-09


[이음리퍼블릭 이해인 기자]

*이 글은 Judith H Dobrzynski 의 "Why does contemporary art make for wildly popular blockbusters?" 를 번역한 글입니다.
*This article was originally written by Judith H Dobrzynski, and published on Aeon.


  Hans Holbein, Édouard Manet, Georges Braque 나 Paul Klee 같은 예술가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앞으로 꽤 어두운 시간이 닥칠 것 같다. 분명 그들은 훌륭한 예술가들이지만, 불행하게도 클로드 모네 (Claude Monet) 나 파블로 피카소 (Pablo Picasso)처럼 유명하지는 않다. 수년간 공공 예술 교육이 쇠퇴해온 이후, 이제 인지도가 바닥을 치는 예술 시장에서는 가장 주목받는 극소수 예술가들만 대중에게 인정을 받으며 관객들을 모으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오래 전 이름을 날렸던 정통 예술가들에게 소외감과 외로움을 주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외로움을 우리는 관객으로서 이미 통감하고 있다. 


  미국 전역의 박물관들은 상당히 괜찮은 수의 관객들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 삼 년 동안 미술 박물관 소장 협회 (Association of Art Museum Directors)와 제휴를 맺은 242 개의 박물관은 매년 6천 만명의 방문이 이어졌다. National Enderment for the Arts 설문 조사에 따르면, 2015 년에는 19 %의 성인이 박물관이나 갤러리에서 미술 전시회에 참석했다. 그러나 2007 년과 2015 년 사이에 미국의 주요 박물관이나 갤러리에서 개최 된 특별 전시회의 절반가량이 1970 년 이후 제작 된 '현대미술'에 전념했다고 아트 신문 (The Art Newspaper)은 말했다. 결국 6천만명을 갤러리로 끌어들인 것은 정통 미술이 아니라 한정 기간 동안 열리는 현대미술에 전시회 라는 얘기다.

달라스의 남부 감리교 대학 예술 연구 센터와 함께 진행 된 연구에서도, 현대 미술 전시회를 조직하는 갤러리들이 역사적인 전시물을 포함하는 '보편적' 갤러리들보다 훨씬 더 많은 방문객들을 유치한다고 하였다.

  방문률을 높여야 한다는 압력을 받고있는 박물관 감독들이 넘치는 지금 환경에서, 한스 홀바인 같은 거장조차도 데미안 허스트, 마네 트, 크리스천 마크 클레이, 브라 크, 장 미셸 바스키아, 클라이 대 제프 쿤스 같은 예술가들에게 밀려나 그의 입지를 잃어가고 있다. 고대 미술 컬랙션을 오랫동안 자랑 해 왔던 박물관조차도 이제 트랜드를 따라 현대 미술을 강조하려고 하는 추세다.


지난 몇 년 간, 몇 몇 박물관 디렉터들과 기금 모금 운동가들은 일부 사람들이 현재 '선대 현대미술(풀어서 말하자면 과거에 존재했던 구식 현대미술)' 전시를 위한 기금모음도 이제 어려워 졌다고 말한다. 후원자도, 기업도, 재단도,  심지어 개인들도 이제 더 이상 조금이라도 나이가 든 예술에는 관심이 없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음악'이 '모짜르트'를 잃는 것과 같은 절망적인 현상이다.
음악에서는 모차르트, 베르디, 푸치니가 여전히 오페라 세계를 통치하고 있으며, 살아있는 오페라 작곡가들의 작품들은 여전히 힘겨워한다. 댄스 회사는 차이코프스키의 ‘호두까기 인형’과 ‘백조의 호수’공연을 여는데, 반면 현대무용 프로그램은 관객들에게 거의 빌어야 할 지경이다. 미국의 교향악 홀들은 베토벤과 같은 고전 음악 프로그램에 참여할 때 관객들이 가장 혼잡하지만, 현대음악이 연주 될 때엔 관객석이 반쯤 비어 있다. 지금 현대미술의 흥행과는 매우 반대되는 상황이다.
물론 이러한 분야는 독자적인 청중 문제를 겪고 있다. 아마도 미국의 콘서트홀에서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은 영화 테마, 비디오 게임음악 등을 제공하는 프로그램들일 것이다. 이 음악들이 젊은 세대에게 강하게 어필하기 때문이다.



또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시각 예술에 분야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과 정 반대이다. 큐레이터들과 감독들이 '오래된 미술'을 '현대와 관련성 있는 것‘으로 엮는 데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미술은 그것들을 진정한 현대미술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미술 작품을 감상하는 관객들 사이에 암묵적인 예술 관습이 있다. 현대 미술은 대중에게 더 쉽게 접근이 가능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아이러니 한 점은, 큐레이터들도 여기에 동의한다는 것이다. 큐레이터들은 이제 더이상 현대예술 작품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싫어한다. 그들의 임무는 물리적 속성과 프로세스를 설명하는 대신에, 관람객들이 작품을 보고 각자 자신만의 의미를 찾게 놔두는 것이다. ‘꿈보단 해몽’이랄까.


그런데 이러한 모호함은 오히려 현대미술을 더 많은 이들에게 매력적으로 어필한다. 게다가 예술가들이 작품에서 묘사 한 역사, 인물 또는 상징을 배울 필요조차 없다. 역시 '꿈보단 해몽'이기 때문에. 따라서 관객들은 현대미술을 감상할 때 무엇인가 불충분하다고 느낄 이유가 없는 것이다.
미술 시장은 Andy Warhol, Koons 같은 작품 덕분에 그 가치가 급부상 했다. 이제 현대미술의 판매는 트렌드를 잡아가고, 미국인들은 그 트렌드에 대한 소란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좇아 갈 것이다. 그것이 구스타프 클림트 (Gustav Klimt), 알베르토 자코메티 (Alberto Giacometti) 및 다른 몇몇 예술가들이, 이제 더이상 이 세상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방문객들을 갤러리로 끌어들이는 원동력이다.

아, 치솟는 인기 말고도 갤러리들이 현대미술을 전시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수탁자 중 많은 사람들이 기금을 마련하여 전시회를 추진하기 때문이다. 예술과 미술의 역사에서 제외 되었던(인종차별과 성차별로 인해) 사람들 보다 더 다양한 사람들과 예술가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전시회들이, 드디어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예술계와 미술은 역사적 불균형을 이제야 바로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 때문인지 큐레이터가 되고자하는 대학원 미술사 학생들도 이제 현대 미술에 점점 더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요소들이 결합되어 세계 최고의 현대예술 작품에만 관심을 모으게 된다면 과거 문명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줄어들게 될 것이다. 다른 시간과 장소, 세계에 대한 지식이 좁아질수록 인간 본성에 대한 우리의 지식도 더 얇고 좁아지기 마련이다. 우리는 간단히 말해서, 덜 정교해 지는 것이다.


Albrecht Altdorfer 또는 Luis Meléndez의 걸작처럼 예술적 만족을 보고 느끼는 순수한 즐거움을 소비하는 것 말고는, 우리는 현대 예술의 경험을 풍성하게 하는 우리 자신과 예술 작품을 잇는 가장 중요한 연결 고리를 잃어버리게 될지도 모른다.예술과 문화는 항상 우리에게 커다란 계약서를 내민다. 무엇 하나를 얻기 위해서는 또다른 하나를 포기하라고. 아직까지 우리는 거기에 대해 타협하는 방법을 모르고 있다. 현대의 감성과 트렌드를 지키기 위해 과거 찬란했던 예술의 명성을 잊을 것인가, 아니면 정통 예술을 지키는 대신에 현대예술의 진보에서 뒤떨어질 것인가.

그 커다란 계약서가 우리 앞에 놓일 때 마다, 우리는 항상 불공정한 선택을 강요받는지도 모른다.


이음리퍼블릭 이해인 기자 / iyolin@iumrepublic.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