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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힘, 언어가 가진 '생명력'

2019-07-31

[이음리퍼블릭 권승원 기자]  


언어는 사람과 사람이 구성한 사회, 나아가 사회의 연합인 국가를 지탱하는 핵심 요소이다. 


구약성경 속 창세기 11장 7~9절은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7.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8.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으므로 그들이 그 도시를 건설하기를 그쳤더라 9.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음이니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이는 언어를 중심으로 공동체가 연합했으며, 인간들이 언어가 서로 통하지 않게 되자 공동체가 흩어진 ‘바벨탑’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성경 속 이야기처럼, 실제 현재 지구 지도를 살펴보자. 지구 지도 속 국경선의 형태로 분리된 각각의 나라들은 몇몇 경우를 제외하고는 국경 안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는 공동체가 연합해 국가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실제로 바벨탑 이야기와 매우 흡사하게 서로 다른 언어에 따라 사람이 흩어지고 다른 문화와 풍속이 생겨 다른 민족이 건설되었다는 신화, 전설들은 대륙, 민족을 불문하고 전 세계에 존재하고 있다. 이렇듯, 언어를 중심으로 공동체, 사회가 연합하고 국가를 이룬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면, 언어가 인간과 인간이 이루는 사회 연합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언어가 가진 힘, '언어의 생명력' 때문일 것이다.


간단한 예를 하나 들어보자. 우리 모두는 누군가가 던지는 섬뜩하고 불쾌한 말 때문에 시간이 지나도 못내 불편하고 불쾌한 마음과 의식을 쉽사리 지우지 못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심지어 나 스스로 이성적으로 그것을 부정하며 믿지 않을지라도 누군가가 뱉어낸 언어는 우리의 머리, 그리고 의식 속에 들어와 그것을 우리 스스로가 더욱 곱씹게 만들어 그 언어가 우리 마음 속 깊이 남겨진 경험이 있을 것이다. 또는 누군가가 남긴 아련한 말 한마디가 마음에 깊숙이 박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그 순간을 떠올릴 때마다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그 언어들이 마음을 계속 아리게 하는 경험을 갖고 있을 것이다. 영화 '인셉션'을 보면 누군가의 무의식 속으로 들어가 특정한 생각을 누군가의 머릿속에 심는 장면이 노출된다. 이처럼 언어란 것은 사람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인지하지 못한 순간에 사람의 머릿속에 강하게 박혀 그 사람의 의식, 나아가 무의식을 지배한다. 즉, 누군가가 뱉은 언어란 것은 그 사람의 입이나 손을 타고 가볍게 전달되었을지라도 접하는 이의 머릿속에 들어와 의식 안에서 자라고 마음에 깊게 자리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언어가 가진 생명력을 뜻한다. 이를 더욱 연관성 있게 해석하면, 사람이 삶에서 접한 언어들이 그 사람 안에 남아 결국 그 사람 자체를 만든다는 것이다. 

영국의 전설적인 영문학자이자 소설가인 J.R.R. 톨킨은 이런 언어가 가진 힘, 언어의 생명력을 그대로 인지했다. J.R.R. 톨킨이 전설의 명작 '반지의 제왕'을 만들어낼 당시, 톨킨은 각기 다른 창조 언어를 바탕으로, 언어가 가진 특성, 그 차이에 따른 다양한 종족들을 연이어 창조해냈다. 현존하는 모든 판타지 게임의 모토이자 우리 모두가 들어봤을 법한 다양한 종족들은 모두 J.R.R. 톨킨이 창조한 가상의 언어들, 그 언어들이 가진 특성에 따라 유추되는 성향과 생활관을 바탕으로 창조된 것이다. 이렇게 탄생한 반지의 제왕은 다양한 언어와 이를 기반으로 탄생한 다양한 종족 및 세계관으로 유럽 국가 중 비교적 뒤늦은 역사의 시작으로 인해 민족 고유의 신화가 타 민족에 비해 부재하다고 할 수 있던 고국 영국에게 J.R.R. 톨킨이 헌정한 신화로 기록되고 있다.   

   

이렇듯 언어는 생명력을 갖추고 있으며 인간의 삶을 결정짓는다. 특히 한 인간의 인격이 형성되는 유년 시절의 언어 교육이 갖는 중요성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큰 편견이나 거부감 없이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유년 시절에 접하는 언어들은 그 사람의 언어 습관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의식과 인격 자체를 만들어 낸다고 할 수 있다.


생명력을 갖춰 인간의 삶을 결정짓는 언어를 우리는 하루하루 접하는 일상에서 어떻게 대하며 활용하고 있을까? 스마트폰이 믿을 수 없는 속도로 보급을 이룬 지난 몇 년간 인류가 사용한 언어 문자 데이터의 양은 인류가 몇 천 년간 사회를 이루고 살아오며 사용해온 문자 데이터의 양을 능가한다고 한다. 즉, 스마트폰의 보급을 통해 인터넷 망을 타고 이전에는 볼 수 없을 만큼의 많은 언어가 흩뿌려지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인터넷의 익명성이다. 익명성이란 것은 자신의 존재를 가린 채 자신이 뱉은 언어를 포함한 다양한 행위에 대해 책임을 회피할 수 있다는 특징을 전제로 한다. 그런 탓일까, 인터넷의 익명성을 활용해 남긴 인터넷 게시글, 또는 댓글들은 막대한 피해를 야기했다. 이는 댓글로 인한 유명인의 자살 등 그 예를 일일이 나열하기 힘들 정도이다. 이 현상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언어를 더욱 쉽게 사용할 수 있는 만큼, 누군가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생명력을 가진 언어를 그저 유희, 의식적인 악의 또는 큰 생각 없이 남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시대, 상황에서 우리가 해야할 것은 무엇일까? 생명력을 가진 언어의 힘을 인지해 좋은 언어 컨텐츠를 접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스스로, 그리고 주변에 긍정의 언어, 희망의 언어를 뿌리길 시도해야 한다. 


막역한 사이를 강조하며 거친 말들을 주고받는 관계도 존재한다. 그러나 결국 언어를 전달받는 상대방은 기본적으로 '타인'이라는 것이다. 언어를 뱉는 우리 마음에 좋은 것을 품고 있을지라도 궁극적으로 타인인 상대방에게 전달되는 것은 우리 입과 손으로 전달되는 언어이다. 그런 만큼, 우리가 전달하지 않는 한, 타인은 우리 안에 품고 있는 좋은 마음을 모두 정확하게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는 사실 그저 모 유명 과자 광고 카피일 수도 있다. 


우리가 '낯뜨겁다'라는 시시한 이유들로 꺼리게 되는 언어들. 그 언어들을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이들에게 전달할 시간과 기회는 영원하지 않다. 어쩌면 내일이면 신기루처럼 사라져 없을 수도 있는 것이다. 0%의 가능성이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현실에서 '다음에 하자. 기회될 때'라고 여기고 표현을 미루는 것은 어찌 보면 큰 만용일 수도 있다. 


앞서 언급한 인터넷,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언어의 보급과 유통이 무한으로 자유로워진 만큼, 우리가 의식적으로 구하고 찾을 경우, 우리의 의식과 삶을 보다 긍적적이게 바꿀 좋은 언어 컨텐츠를 접할 기회도 많을 것이다. 또한, 우리 안에 품은 좋은 언어들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할 기회도 많을 것이다. 문명 발전의 결과물 중 하나인 인터넷, 스마트폰을 활용해 좋은 언어 컨텐츠를 찾아 내 안에 담기 위해 노력하고, 의식적으로 주변 소중한 사람들에게 좋은 언어를 신중히 선택해 전달해보면 어떨까. 아마 내가 굳이 표현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알아주던 그 사람이, 표현함으로 내 마음을 더 정확하게 이해하고 알게 되는 상황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글/ 권승원 hayden@iumrepublic.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