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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이 지닌 가치와 매력, 보상과 댓가를 넘어선 애정과 애착

2019-07-22

[이음리퍼블릭 권승원 기자]


시대가 지나도 여전히 옛 것이 그대로 지닌 가치와 매력을 일컫는 단어를 '클래식'이라고도 표현한다.


이제는 거의 모든 문자들을 디지털로 변환해 컨텐츠를 생산하는 현 시점에 몇몇 사람들은 여전히 타자감과 결과물의 차이를 언급하며 타자기를 사용하기도 한다. 반면에 몇몇 사람들은 여전히 만년필 등의 필기구로 직접 자신의 감성을 담은 언어를 적어내고 있기도 하다. 또한, 이제는 스마트폰에 카메라가 장착되어 촬영과 거의 동시에 촬영 결과물이 SNS에 업로드되는 시점에 몇몇 사람들은 필름 카메라의 매력을 언급하며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여전히 소장하고 소중한 순간들을 기념하고 있다.


언급했던 클래식한 물건을 사용한다는 것은 몇 가지의 전제조건이 따른다. 우선 그 물건들은 현 시대에 사용하기에는, 현 시대 기준에서는 약간의 귀찮음과 번거로움, 즉 수고를 감당해야하며 그런 수고를 동반함과 동시에 그에 맞는 확실한 보상과 댓가가 주어진다는 것이다. 수고에 따른 보상과 댓가가 충분히 주어질 경우, 앞서 전제된 수고는 "이정도는 그래도 하다 보면 할 만 한데"정도의 기꺼이 감당할 수 있는 노력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만년필의 경우를 보자. 현 시대의 거의 모든 문자 컨텐츠가 컴퓨터 자판기 자판, 아니 심지어는 스마트폰 액정의 자판으로 입력되어 유통되고 공유되어 지는 시점에 만년필은 효율성 기준으로는 분명 이치에 맞지 않다. 잉크를 충전해야함과 동시에 일일히 손으로 또박또박 적는 과정을 거치는, 그리고 오탈자의 자연스러운 수정이 불가능한 점 등 많은 부분이 현 시대의 효율성과는 거리가 멀다. 특히 점점 어린 나이부터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현 시대의 인류는 점점 문자를 디지털로 입력하는 속도 또한 크게 증가하고 있다. 이런 모든 요소들이 만년필을 사용하는 행위 자체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것처럼 만든다. 그러나 여전히 만년필을 사랑하고 소유하며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왜일까? 그것은 바로 만년필이라는 클래식한 물건이 지닌 가치 때문이다. 많은 만년필 사용자들은 서걱서걱 만년필로 종이에 직접 글씨를 적거나 또는 낙서를 하다보면 어느새 마음이 안정되고 복잡한 마음이 치유가 되는 경험을 해봤다고 고백하고 있다. 또한, 디지털로는 느낄 수 없는 사용자만의 '손맛', 즉 사용자의 감정과 개성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글씨를 만년필은 고스란히 담아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다소 느릴지라도 글쓰는 행위 자체를 즐기는 사람에게는 어떤 글이든, 이미 글을 쓰고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행복감과 만족감을 안겨준다.

비슷한 예로,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경우도, 현대과학 기술의 발전에 따라 애니메이션을 구현할 수 있는 수많은 장비들이 존재하지만, 여전히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도구', '자신의 감정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도구'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직접 연필과 붓으로 스케치를 한다고 한다.


만년필, 그리고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예들을 볼 때 이는 단순히 수고와 비효율성을 감당하고서라도 찾아오는 보상과 댓가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현 시대 기준에서 그것들이 주는 보상과 댓가를 고려하더라도 효율성이 너무나도 떨어지기 때문이다. 결국, 그것은 바로 약간의 수고, 그리고 비효율성이 가져다 주는 '애정과 애착'에 대한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수고를 감당하고서라도 무언가를 사용한다는 것은 결국 미야자키 감독이 '가장 사랑하는'이라는 형용사로 표현했던 것처럼, 그 사용하는 것에 대한 애정과 애착을 만들어내며, 그 애정과 애착은 시대가 지나도 기꺼이 그것을 사용하게 만드는 것이다.

결국 만년필, 그리고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을 예로 들었지만, 클래식한 물건을 사용하는 것에 대한 원리는 우리 삶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클래식한 물건에 깃든 가치와 매력을 인정하고 기꺼이 조금의 수고와 비효율성을 감당하는 것처럼, 우리 삶에 깃든 가치와 매력을 탐미해보는 것 말이다. 앞서 언급한 귀찮음, 번거로움 등의 수고와 비효율성을 감당하고서라도 그에 대한 보상과 댓가가 주어지는 것, 그것을 기꺼이 해보는 것은 단순히 보상과 댓가를 넘어 무언가에 대한 애정과 애착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한다.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나', 그리고 '내일의 나'에게 스스로 조금 더 애정과 애착을 갖기 위해 자신 스스로를 위한 작은 수고가 동반된 무언가를 해보는 것 말이다. 그것이 조금은 번거롭고 비효율적일지라도 우리 삶, 나아가 내 자신에 대한 애정과 애착을 만들기 위해 무언가를 해보는 것. 예를 들어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잠시라도 시간 내어 종이 냄새 맡아가며 서걱서걱 직접 손 글씨를 쓰며 생각을 정리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또는 역시 잠시 시간을 내어 스마트폰을 가방에 넣어둔 채 한 정거장 먼저 내려 터벅터벅 걸으며 고요하게 잠시 생각할 시간을 갖는 것. 스마트폰으로 바쁘게 누군가와 소통하거나 정보를 찾는 것이 아닌, 유희를 위해 무언가를 하는 것이 아닌, 내 자신에 대한 애정과 애착을 갖기 위해 내 자신의 솔직한 심정과 복잡한 머리 속 생각을 정리하는 일. 이런 행위들은 약간의 수고를 동반하며 효율성의 기준으로는 분명 이치에 맞지 않지만, 분명 나를 위해 필요한 시간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그 행위에 대한 애정과 애착이 결국 자신 삶에 대한 애정과 애착으로 이어질 것이란 생각이 든다. 비단 직접 손 글씨를 적거나 잠시 산책하는 것들의 예를 들었지만, 이는 자신을 위해 하는 무엇이나 해당될 수 있다. 약간의 수고를 동반하지만 삶에 깃든 가치와 매력을 탐미하고 나아가 자신 삶에 대한 애정과 애착을 만들 수 있는 무엇이라도. 그런 작은 노력들이 시대가 지나도 계속해서 사랑받는 '클래식'처럼 '매력적인 나', 나아가 '내 자신이 애정을 갖는 나'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글/ 권승원 hayden@iumrepublic.com